내가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을 처음 본 건 꽤 어린 시절 (중고등학생 시절) 어떤 기사에서였다.
그게 일본 만화를 비판한 거였는지, 우리의 만화 구조를 비판한 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사에서 예로 들었던 <일본 순정 만화 주인공>에 소개된 것 중 하나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였다.
굉장히 특이한 그림체.
말 그대로 칠흑같이 먹으로 한 붓에 그려 내린 듯한 여자 주인공의 단발 머리와
그 동안 봐오던 눈이 주먹만한 별로 반짝이는 주인공이 아닌, 사람처럼 생겼는데도 정감이 갔던 여자아이였다.
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 나는 순정만화는 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 동네와는 달리 일본 만화가 천지에 널려있던 서울로 대학을 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일본 만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보게 된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열자마자, 어릴 때 읽었던 기사가 생각이 났다.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인상이 남았던 종이 속의 여자아이.
이 사람이었구나.
나는 성장이 더딘 편이다.
비단 키 이외의 신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성장이 느렸기 때문에
또래 녀석들과는 사고가 많이 어긋났다.
녀석들의 보폭을 못 따라간 게 맞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대학생 씩이나 되서 H2를 봤음에도
히카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고,
히로도 갈팡질팡 하는 듯해서 싫었고,
히데오도 히카리를 꽉 잡지 못해서 싫었다.
오로지 하루카만 불쌍했다.
그렇지만, 난 이 만화를 참 여러 번 읽었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까지 계속 볼 수 밖에 없었던 건, 설명 없이, 대화와 그림으로만 진행되다시피하는 이 사람 만화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건 마치 여자 아이의 머리카락을 붓으로 그려낸 것처럼
이야기 자체도 말 없이 뒤돌아 앉아있는 수묵화의 여백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거야....라고 나즈막히 속삭였더랬다.
그렇게도 저 세 사람이 밉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인가 히로와 히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만화가 그렇게 끌리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장면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딱히 입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서로의 마음이
딱히 설명을 해 주지 않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와 너무도 잘 맞아서 그게 더 슬펐다.
다 알고 있는 전개이지만, 가슴을 계속 졸이면서 한 장 한 장을 넘겼고,
어떻게 될 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가 보지 못한 미래를 두고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을 바라만 보는 마음이 너무도 스산했다.
그렇기 때문에 말 못하는 그 첫사랑이자 어긋나 버린 짝사랑의 고통이 아주 뒤늦게서야 나한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아다치 미츠루 만화인 것이다.
설명을 해 주지 않으니깐, 나 같은 사람은 이야기의 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화만 내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어릴 때에는 놓쳤던 부분도 다시금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처럼 만화가 사람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H2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할 때 꽤나 두근거렸다.
나 자체가 하나의 만화를 두고 이리저리 시각이 흔들렸기 때문에 드라마는 누구를 바라보고 만들 것인지가 궁금했다.
분명 감독 혹은 작가는 히카리와 히로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어정쩡한 결말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H2의 팬이든 아니든 드라마 결말을 두고, 혹은 히카리를 두고, 혹은 하루카나 히로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나는 나의 갈팡질팡하던 여러 가지 내 모습이 동시에 떠 올라서 그런 말들이 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사실 그랬단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드라마의 결말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히로가 이겨야 좋을 지 말지를 두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았던 시절,
결국 만화 속의 결말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그렇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 주어서, 꽤 오래동안 마음 한 구석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두 아이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 머리 속에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확실히 만화 H2의 결말은 그 이상의 결말은 없을 정도로 최고의 결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드라마 속의 결말은 어쩌면 아다치 미츠루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보았을 번외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결국 사람은 내일이라는 가능성이 있기에 오늘을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미지 출처:
H2 만화 :: 코믹스톰
H2 드라마 :: H2 공식 홈페이지
시디를 찾기 귀찮아서 웹을 뒤졌더니. 역시나 나오는구나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때 H2를 떠올렸는데,
역시 김민규형아 H2를 모티브로 가사 쓴 게 맞구나.
그러고 보면, 오마쥬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지도.
둘 다 손색없고, 어떤 것을 봐도 다른 것을 떠 올릴 수 있고,
원작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존경의 표시.



